
요즘 AI 발전 속도를 보면 정신이 없다.
몇 달 전만 해도 신기했던 기능이 어느새 기본 기능이 된다. AI가 보고서를 작성하고, 코드를 만들고, 여러 프로그램을 오가며 업무까지 처리한다.
그런데 정작 조직으로 돌아오면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작년 양식을 올해도 그대로 쓰는 조직
보고서 제목은 16포인트, 본문은 15포인트. 당구장 표시는 13포인트. 표의 순서도 정해져 있다. 작년에 사용한 양식을 올해도 그대로 쓴다.
누군가 묻는다.
"이 표는 꼭 필요한가요?"
돌아오는 답은 대개 비슷하다.
"원래 이렇게 해왔어요."
그렇다고 이걸 단순히 관료주의나 변화에 대한 저항으로만 볼 수는 없다.
오래된 양식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누군가의 지시가 있었고, 감사에서 지적받은 경험이 있었고, 부서 간 합의가 있었다. 담당자가 바뀌어도 업무가 이어지도록 만든 장치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이유가 사라진 뒤에도 양식은 남는다는 것이다.
한번 추가된 보고 항목은 좀처럼 삭제되지 않는다. 새로운 요구가 생기면 기존 항목을 없애기보다 하나를 더 붙인다.
그렇게 보고서는 조금씩 두꺼워진다.
AI를 도입해도 업무가 빨라지지 않는 이유
이런 조직에 AI를 도입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AI는 30분 걸리던 자료 정리를 3분 만에 끝낸다. 그런데 결과물을 다시 기존 양식에 맞추고, 여러 단계의 보고를 거치고, 이미 공유한 내용을 별도 문서로 다시 작성한다.
기술은 10배 빨라졌는데 업무는 그만큼 빨라지지 않는다.
특히 거대한 조직일수록 그렇다.
조직이 커질수록 작은 변경도 여러 사람의 업무와 권한에 영향을 미친다. 양식 하나를 바꾸는 일이 단순한 편집 문제가 아니라 책임과 의사결정 구조를 건드리는 문제가 된다.
그래서 AI 도입 예산은 수십억 원씩 편성하면서도 보고서 한 장을 없애는 결정은 쉽게 내리지 못하는 역설이 발생한다.
AI가 없애준 일을 실제로 없앨 수 있는 조직인가
앞으로 조직의 AI 경쟁력은 어떤 모델을 도입했는지만으로 결정되지 않을 것이다.
AI가 없애준 일을 실제로 없앨 수 있는 조직인가.
오히려 이 질문이 더 중요해질 것 같다.
여러분의 조직에는 아무도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지만 여전히 지켜야 하는 양식이 몇 개나 있는가?
이 글은 리멤버에 2026. 10. 16. 처음 게시했습니다.
공공안전 AI 랩(PSAIL) · https://publicsafetyai.org
공공부문 AI 도입을 기술이 아니라 조직·데이터·책임의 문제로 봅니다.
『거대한 코끼리를 춤추게 하라』(박영사) → http://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21189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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